결혼 못하는 남자..

2009. 8. 3. 01:27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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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창 일본드라마에 빠져 있을 무렵에, 나를 빠져들게 한 드라마 한 편이 있었다. 제목조차 도발적인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

방영기간이 2006년 7월 4일부터 9월 19일까지, 12부작으로 평균 시청률은 16.93%에 이르렀다. (일본에서의 드라마 시청률이 15%를 넘는 것은 단순 시청자수만 따져도 우리의 30%를 넘는 정도다.)

아베 히로시의 주연으로, 위에 올린 사진처럼 정말 결혼 못해보이게 생긴 사람이라는 데 있다.

지금은 홈페이지에서도 지난 방송으로 나와 제대로된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지만, 그나마 국내에서 방영을 하여 해당 정보를 찾아볼 수는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폼 나는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을 줄 알고, 하고 싶은 거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쿨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DVD샵에서 야한 DVD를 보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소심해져서 빌리지 못하고 그냥 나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을 꿰뚫는 일관된 생각은, 아베 히로시가 생각하기에는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닌 "결혼을 안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컨셉을 가져오되, 그걸 우리나라 정서로 포장해 버린 것이, 국내판 "결혼 못하는 남자"이다.

하지만 당초부터 지진희나 엄정화가 해당 캐릭터를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결혼을 못할 것 같은, 아베 히로시의 간사한 웃음이나, 저 사람을 누가 데려가나 싶은 나츠카와 유이의 연기와 비교했을 때, 지진희나 엄정화는.. '왜 저 사람들이 결혼을 못해?'라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캐스팅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못 할 것 같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들이 그렇게 "결혼을 안 하는 것"이라는 말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나름으로는 그들의 그런 생각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에 느껴지는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나, 결혼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한, 기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가장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에 반대한다"는 아베 히로시의 대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통쾌함을 불러일으켰는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못 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서 보자면,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결혼이라는 허무맹랑하고 거품으로 가득찬 것에 반대한다"는 용감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오로지 스토리 하나만으로도, 예쁜 여배우 없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을만큼 큰 공감을 얻었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리도 변모해 버렸단 말인가?


일본드라마의 국내 방영의 영향도 있지만, 일본드라마를 보는 팬층은 과거보다 월등히 많은 상황이다. 단순히 일본드라마를 패러디하는 수준이라면, 차라리 일본드라마를 국내에 수입해서 자막을 입혀서 방영하는 것이 낫다.

과거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국내에서 영화로 제작하면서 미스캐스팅으로 얼마나 많은 물의를 일으켰는데, 또 한번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게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단순한 장면의 카피가 아닌, 원작드라마가 왜 인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있었는지? 아니면, "결혼 못하는 남자"에 나오는 지진희를 보고, 우리나라 기사에서 "초식남"을 운운하는 모습에서.. 과연 기자들은 원작드라마를 보고 기사를 쓰는 것인지도 상당히 의심스럽다.

"문화" 역시 소비가 가능한 컨텐츠의 일부라면, 적어도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만들어만 놓으면, 아무 생각없이 바보처럼 우르르 달려드는 소비자들은 없을 테니까.


★ 참고 사이트

※ 파이낸셜뉴스('11.11.20), "결혼정보업체 여성 회원 등급표 들여다보니.."
※ 웅코맨(2012.10.17), "80년대 일본경제. 그리고 초식남. 그리고 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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