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우리의 모습을 그리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2011. 11. 6. 12:25세상보기/조금 더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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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던 서가에서 눈길을 끌던 사진 한 장


전에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사는 것"이 오히려 좋아진다라고 하면, 그건 지금처럼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까? 대학교 때 책을 사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지갑에 한숨쉬며 학교 도서관의 서가를 기웃거리던 학생은, 직장에 들어가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지하에 대형서점을 기웃거린다. 마치 대학교 때로 돌아가 도서관의 서가를 기웃거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대학교 때 시작된 일본 소설에 대한 관심은 남아있는지,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베스트셀러 서가도 아닌, 일본 소설 서가쪽이다. 우리나라 소설들이 다루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그들의 소설을 보면, 컨텐츠의 힘이나 상상력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찾아낸 한 권의 책.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사실, 일본 소설이나 일본 드라마보다는 중간에 잠시 악기에 빠진 적도 있지만, 어느 결인가 내 취미는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쁜 업무에 치여살면서도, 사진 안에 담기는 세상의 새로운 모습들은 투박한 내 손을 거치고 나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을 끈 것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고, 그 안의 따에 한 여자가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흘깃 생각해보면, 취미생활 사진 관련 서가에 꽂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한 장의 사진. 구보 미스미(窪美澄)라는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2011년 야마모토슈고로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띠라벨보다도, 그 한 장의 사진에서 난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내가 산 책은 알고보면 19금 소설 

퇴근길 표지사진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사고, 늘 가던 대로 지하철 패스를 찍고 지하철 안에서 책 내용을 열고 나니, 정말 단 2장 만에 19금 설정이 나왔다. 이른바 남자들의 성교육 자료인 일본 AV에서도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등학교 같은 반 여자아이와 함께 둘 중 어느 한쪽의 집 혹은 도로변의 모텔에서, 혹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야외의 장소에서 욕망이 시키는 대로 두세 번 몸을 떤 뒤, 묵직해진 허리를 느끼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뉴스를 보면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라는 것이 이 근처에 사는 살짝 멍청한 녀석들의 전형적이고 건강한 성생활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느 시점에선가 거기서 크게 벗어나버렸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될 때부터 이 책, 뭔가 있구나 싶었는데.. 일단 시작에서부터 크게 때려준 덕분일까? 다른 책들을 읽을 때는 몇십 페이지 정도를 읽고, 또 다른 것들을 하거나 하다가 며칠에 나눠서 읽던 나였는데, 한 큐에 끝까지 다 읽게 되었으니, 작가의 입장이나 아니면,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섹스에는 여러 가지 체위가 있다는 사실이나 도구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안즈에게서 배웠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섹스가 끝나면 "미안"하고 말하면서 안즈는 내게 돈을 주었다. 나는 그 꼭꼭 접어 작아진 일만 엔 지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돈을 받을 때 죄의식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친척 아주머니가 주는 용돈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바보 머리로 잠시 생각해보고, 어느 날 갑지기 알았다. 안즈는 나를 돈으로 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조산원이기도 한 셈이다. 방음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보통 민가라서 산모의 괴로워하는 소리는 이 집 어디에 있어도 들린다. 남자의 성기를 넣었을 때나 그 결과로 만들어진 아이를 내놓을 때나 여자의 입에서 같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를 분만할 때 내는 소리라는 걸 모르고 듣는다면 영락없이 성인비디오에서 나는 소리다.


하지만, 단지 섹스에 대한 19금의 내용만을 담았다면, 과연 표지에 둘러져 있는 띠지에 적혀있는 것처럼, 무언가에 대한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19금을 담기 위해서 다른 내용을 부수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포르노"이지만,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 19금을 활용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되는, 많은 감독과 작가들의 이야기들처럼, 일단은 책을 모두 읽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않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못할 것으로 생각을 했던 것일까? 개연성이 높다면 그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란 어렵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와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독자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에서는, 그런 흔히 생각하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의 소재로, "유부녀와 섹스하는 조산원에서 자란 고등학생(타쿠미)", "그 고등학생(타쿠미)과 원조교제는 하는 유부녀(안즈)와 그의 남편(게이치로)", "그 고등학생(타쿠미)을 남자친구로 둔 여고생(나나)과 그의 오빠(유스케)", "치매걸린 할머니를 모시는 그 고등학생(타쿠미)의 친구(료타)와 친구의 여자친구(아쿠쓰)", "유부남과 바람을 피웠었던 그 고등학생(타쿠미)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결국 이야기의 구심점은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한 고등학생 한 명에게서 이루어진 것이고, 여느 막장 드라마에서도 함부로는 다루지 못할, "고등학생과 유부녀의 원조교제", "왕따녀와 왕따남 커플의 엉망진창 부부생활", "난잡한 성문화의 사이비 종교에 빠진 대학생", "기초생활 수급자 가족의 현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다큐멘터리는 이야기적 서사구조가 부족하니, 그런 서사구조를 조금 더 보완한 페이크 다큐 한 편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흔히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지, 고등학생을 성적으로 사고 있는 유부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충분히 흔할 것이며, 수많은 학교에서 수없이 많은 왕따들이 생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런 왕따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척하며 결혼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따가 사회문제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 이제 그들도 결혼의 적령기에 진입하였다.) 사이비 종교의 문제도 이미 우리 근처에 있는 것이고,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존재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현실들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우리가 직접 이렇게 보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마치 인간이 그 뱃속에 며칠을 싸도 부족할 정도의 똥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지나는 똥차의 모습과 그 안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고개를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스스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아니 어쩌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을 뿐, 사실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 끌어안는 것은 더 큰 문제의 시발점

이런 셀 수 없을 만한 복잡한 내용들을, 작가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 고등학생의 어머니 조산사의 모습으로 다 끌어안으려 한다. 결국 인간은 모두가 흠결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흠결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조산사의 모습에서 다 덮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그 어머니 역시도 과거 유부남 의사와 바람을 피웠던 전력이 있는데 말이다.

전하려는 의도는 알 수가 있다. 사람은 결국 모두가 흠결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흠결이라는 것은 "세상"이라는 벽 앞에서는 "흠결은 흠결이다"라는 절대 명제에 무릎을 꿇고 만다. 마치 예전에 "올드보이"에서 "모래알이든 자갈이든 결국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처럼, 그들의 행위에 있어서의 "책임"을 경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책임 없이 행위는 행위대로 벌어지고, 그리고 그것이 모두 용서받는다면, 사람을 죽이고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는 전직 대통령들이나 독재시대 주요 인사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걸 모두 다 끌어안으려 했던 것에서는, "작가의 무리수"를 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의 여성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단죄"를 취하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문제가 생겨났을 때 그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봉합"과 원만한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원만한 봉합은 애초에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말기암 환자의 수술을 위해서 개복했다가 결국 아무것도 건들지 못하고 봉합하는 의사라면, 결론적으로 환자를 당장에 죽이지는 못햇지만, 결국 환자가 죽어야 결론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적어도 그게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원인제공자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합당한 벌이 주어져야 그것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멈춰서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는 바쁜 업무에 치이고, 부족한 수면과 피곤에 쩔어 생각하지 못하고, 그나마 시간이 되는 주말에도 슈퍼스타K나 나가수나, 여러 가지 예능 프로그램에만 빠져서 생각이라는 것을 포맷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살짝 "문제의 쟁점에서 비껴서 있는, 초점이 맞지 않는 소설"도 그 나름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끔 하고, 그러한 생각이 본인들 스스로의 가치관을 공고히 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면, 충분히 무언가에 대한 대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있지 않겠는가?

뭐, 만약에 작가가 이런 것까지를 생각하고 소설을 쓴 것이라면, 거의 천재에 가깝겠지만, 천재가 아닐 작가에게 그런 것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사마귀 유치원"처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19금으로 시작해서 순식간에 읽어나간 소설이었지만, 적어도 제 값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은 된다.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논리와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있을 때, 과연 이 책에 나오는 현상들에 대해서 일말의 고민이라도 하고, 그 안에서 만들어져야 할 해결책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적어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당선이 될 터인데..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권력"과 "돈"에만 치우쳐 있으니, 그게 어쩌면 더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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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영2011.11.06 13:05

    일본 서적은 잘 안 읽었는데,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그 분위기가 궁금해졌어요ㅎ 독서평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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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6 13:19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