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 - 누구나 가슴에 사랑의 흉터 하나 쯤은 있은 법

2012. 3. 31. 19:35프로메테우스/나만의 생각나눔

반응형

가슴에 흉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스무살, 고등학교라는 갑갑한 수용소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때 우리 곁을 찾아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마음을 전하는 법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못하기에, 몸은 이미 훌쩍 커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작은 탈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약간은 어설플 수밖에 없는 본인들의 모습보다도 앞서 있는 마음은 결국 전해지지 않고, 그 안에서 생기는 답답함은 결국 상처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어 흉터를 만들어낸 뒤에도 한동안 "마음을 제대로 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형 가정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 '상처'마저도 '추억'이라는 흉터로 변모시킨다. 새살이 돋아나면, 처음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것 역시나 바쁜 일상의 흐름 속에서는 더는 아프지 않은 '그때의 기억'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 영화 "건축학개론" 티저 예고편 


■ 영화 "건축학개론" 본 예고편


상처가 아물어 그리움이 되면 생겨나는 궁금함

죽을 듯 힘들었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그것이 비록 "썅년"이라고 표현되는 지난 시간의 아픈 기억일지라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왔던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고, 어쩌면 그 과거는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넘어졌거나 해서 다친 상처 쯤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흉터의 존재마저도 잊고 있던 어느 날 문득, 그 때 그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그때는 아파서 울고불고 난리였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가 "행복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던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기에 아련해지는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첫 "낯설음"에서 생겨났던 많은 오해와 실수투성이의 본인의 모습에서, 그 "상대방"은 어떻게 변해 있을 지가 궁금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일 것이다. 추운 봄날의 바람이 사그라지고, 문득 따뜻한 햇살이 비칠 때의 느껴지는 아련한 졸림처럼 말이다.
 
흐릿한 과거는 선명해지고 현실은 판타지로 변모해간다

시간이 흘러 잊혀지는 듯 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를 때, 나도 모르게 담배에 손이 가는 바로 그때, 그 선명해지는 기억의 편린과 현재의 모습이 마주한다. 오히려 과거에 생각했을 때 현재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인 삶을 오늘의 나는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그 때에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과 괴리된 내 모습에서, 어쩌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괴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스무살 수지와 이제훈의 모습은 모두가 한번쯤 겪을 수 있었을 뻔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의 일부이지만, 15년이 지나고 "삶"에 익숙해진 엄태웅과 한가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모습은, 일견 현실적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모습일 수밖에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실제로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내 추억 속에 있는 첫사랑의 모습이, 긴 시간 동안의 "추억의 풍화"를 거쳐 승화된 그 이미지보다 나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스무살 아무것도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던 엄태웅이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돈 많은 여자를 만나서 미국으로 유학가는 삶을, 그리고 돈 많은 사람을 원하던 한가인이 최대한 많은 위자료를 받기 위해 이혼서류에 도장찍는 것을 거부하고, 결국 이혼녀의 모습을 살아가는 것. 2012년의 현재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스무살의 수지와 이제훈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의 모습이 아니던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15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굳이 더블캐스팅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 것은 아마도, "스무살의 기억"을 가장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컨트라스트는 강할 수록 이미지가 강하게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 영화 "건축학개론" 첫사랑 희노애락 동영상

 

그리고 우리는 또 오늘을 살아나간다

이 한편의 영화를 9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30대 초중반의 남성을 위한 영화라고 기억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젊은 세대가 유일하게 소비의 주체가 되었었고, 그들을 위한 문화가 주류였던 바로 그때를 풍미했던 한 세대의 단편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다루어진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아왔지 않던가?

80년대의 순수 아날로그 세대와 2000년대의 디지털 세대에 끼여 있기에, 최단시간 내에 문화적 바탕이 사라졌던 그 서글픈 시대(IMF)를 살았던 우리들에게, 가장 선명할 수 있는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아프지만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디지털 세대가 88만원 세대로 전락했던 것에 견주면, 90년대의 세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을 테니까.

■ 영화 건축학개론, 전람회 "기억의 습작" 뮤직비디오


90년대의 모습을 담은 영화가 등장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90년대 세대들이 "성숙"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과거"를 "얽매이는 대상"이 아니라, "추억하는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가 90년대의 추억을 담아낼 것이지만, 그 시작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이 보여준 것은, 결국 지난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인 기억을 "보완(리모델링)"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타깝게 알려주고 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많기에, 다가올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첫사랑의 추억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지에게 빠져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사람보다는, 그 시절의 시간이 그리웠다고 해야할까? 아직은 꿈이 무척이나 많이 남아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또 살아갈 내 모습 속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된 영화인 것 같다. 부디 이런 영화가 많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원해본다.

■ 영화 "건축학개론" 첫사랑 아이콘, 한가인 & 수지 영상



나의 iPad에서 보냄


모든 환상은 실패한다 <건축학개론>의 남성 판타지가 가리키는 것

[ 출처: 김영진 영화평론가, 씨네21 850호, 신 전영객잔 ]<아래more를 클릭하세요>



■ 조정석 키스 설명 명장면




★ 참고 사이트

1. 영화 "건축학개론" 홈페이지
2. 네이버 영화 "건축학개론" 소개페이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