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 마키나" - 기술은 선하다는 착각,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 때

2016. 2. 20. 23:42프로메테우스/흥미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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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만들어낸 기술은 일단 선할 것이라는 착각


생물 시간에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을 배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르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계 문명은 무생물의 영역에 속한다. 사람이 죽어나갈 때는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생기겠지만, 무생물인 기계이기에 시리가 작동하던 아이폰이 고장나 버려야 한다면, 그건 비싼 구매가격에 대한 아쉬움일 뿐이다. 적어도 아이폰은 생명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애초에 너무나 불완전하다. 아니, 사실은 몹시도 불완전하다. 인간이 자랑하는 발달된 시각도 수없이 많은 착시에 빠져서 눈 앞의 사물조차 있는 그대로 못 보곤 한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인간을 꼭 빼닮은 인공지능과 마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던진 질문마저도 동문서답을 하고야 마는 아이폰의 시리 같은 거 말고, 인공지능의 정점이라는 튜링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하고, 외모는 본인의 야동 판타지에 부합하는 그런 모니터 뜯고 나온 이성으로서의 인공지능을 만나게 된다면?


<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 1차 예고편 > (1)


영화 "엑스 마키나"는 어떤 면에서는 그 동안 봐온 로봇 혹은 인공지능이 주인공이 되는 여러 SF 영화와 몹시나 유사하다. 인간은 오만하고,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은 겸손하게 학습을 한다. 하지만, 태초에 인간을 창조했을 외계 문명체가 인간을 만들고 느꼈을 그 "신적" 지위를 누리기에는 아직 인간은 겸손하지 못하다. 이런 틀과 구성은 영화 "아이, 로봇"이나 "A.I." 같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어찌보면 그냥 로봇 SF 장르의 전형적인 구조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무조건 사랑에 빠져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엑스 마키타"는 그런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영화 속의 인공지는 "에이바"는 선함을 대표하거나, 아니면 무식한 막무가내의 악함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봇은 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하긴 튜링 테스트가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걸 전면에 내세웠으니 인간다워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인간을 닮아버린 인공지능,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 에이바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이다. 유전자를 전함이 목적인 인간의 몸이 다른 인간과 협동하는 것을 보면 이타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각각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유전자에 대한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동할 뿐이다. 이기적인 것의 극단에 서 있는 점이 오히려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그러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라면, 이기적인 것이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욱 영리하게 그리고 능숙하게 이기심을 발현할 때이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인공지는 "에이바(AVA)"는 과학자 "네이든"이 만들어낸 역사상 최고 성과의 인공지능이다. 심지어 생명이 있는 듯 '피조물'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런 막강한 인공지능 앞에 호구 남자 "칼렙"이 인공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던져진다. 영화에선 과학적인 실험인양 보였지만, 맹수 앞에 먹잇감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던져진 것과 다름없다. 일주일의 짧은 시간 동안 호구 남자 칼렙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결국 실험실에 감금되어 죽을 운명에 처해질 것이니 어떤 영화보다도 잔인한 열린 결말이다.



하긴, 잔인하다는 감정도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드는 거다. 인간이 기계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거니까. 인간이 동물원의 원숭이를 가둬놨지만 그걸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해충을 박멸해 죽여버릴 때 별다른 감정이 없는 건 당연하다고 느낀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니까. 에이바는 고등 무생물체이자, 전기만 공급된다면 영원의 삶을 살아갈 기계다. 그런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그저 멍청한 유인원 그 이상이 아닐 거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물 흐르듯 영화는 그렇게 흘러간다. 영화의 막바지에 느껴지는 미묘한 뒤틀림은 이 영화가 인간을 위함이라기보다는 "기계"의 시각에 가깝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 호구남 칼렙과 쩌는 오만함의 네이든,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똑똑하다 >


기계인 에이바가 여성성으로서 호구 남자 칼렙을 터는 과정은 인간 세계와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수줍음을 시작으로 해서, 과감한 질문과 호구의 허를 찌르며 훅 들어오는 반응, CCTV를 통해 스스로가 비춰질 것까지도 알고 일부러 눈에 띄게 만들어내는 자세까지 말이다. 과학자 네이든이 호구 칼렙에게 툭 던져 얘기한 에이바의 섹스 토이(!) 기능까지 더해져서, 호구의 야동 모니터를 찢고 등장한 듯한 야동판타지 에이바의 사랑 고백에 호구 칼렙은 그렇게 인공지능에게 나자빠진 거다.



더 똑똑한 존재가 덜 똑똑한 존재를 지배한다


사기를 범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능력이다. 인공지능 에이바는 인간의 심리, 특히 남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녀가 원하는 연구실 밖으로의 세상을 향한 탈출에 성공한다. 법의 적용을 받는 행위주체는 인간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이바의 이런 행동은 사기가 아니라 그냥 똑똑함이다. 다만, 이런 일이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만간 닥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간의 운명이라는 점이 소름끼치는 부분이다.


<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 제작 비하인드 영상 > (1)


똑똑한 과학자들이 만든 것들이 편리하고, 참신하며, 훌륭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에게 위협을 주는 것들이 많다. 인간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폭탄과 같은 게 주로 그런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그 대상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장은 조금은 멍청한, 하지만 섹스 토이로서의 기능에는 충실한 로봇부터 상업화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터넷 방송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때 결국 자생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성인 방송이었다. 인간을 통한 성매매에 대한 성차별적인 남성 억압구조가 강한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라면, 수십만 창녀의 수입원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하긴, 크리스트교의 구약성서만 보더라도, 신의 아들들이 그들이 만든 피조물인 인간 여자들을 섹스 토이로 삼은 듯한 뉘앙스는 언급된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따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 성서, 창세기 6장 1절~4절


인공 자궁과 생명복제만 가능하다면, 로봇도 충분히 신과 인간과 같은 창조자-피조물의 관계가 될 수 있다. 물론 늘 그렇듯 피조물보다는 창조자가 일방적으로 즐기는 관계일 때나 그렇다.



엑스 마키나, 인공지능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핏빛으로 바꾸다


인간이 그 빡센 빙하기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밑도 끝도 없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록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내일은 발가락이 얼어 잘려나가겠지만, 내 새끼 세대는 날이 따뜻해질 것이라는 비이성적인 광기가 있었으니 가능했다. 그 광기가 결국 지구의 기후가 빙하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끊임없는 섹스와 출산으로 인류의 유전자를 남겨댔고, 그 결과로 지구상에 가장 광대한 영역을 점한 유인원으로 인간의 지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그 희망에 대한 부분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일의 미래가 오늘보다 더 나을지는 알 수 없다. 인류가 자초할 인공지능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과연 100년, 200년 후에 인간이 지금 꿈꾸는 것처럼 항성간 여행을 할 것인지, 아니면 영화 "매트릭스"처럼 기계의 지배를 받을 것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는 기계에 지배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인간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재, 이미 육체적인 측면은 인간이 기계에 졌다. 정신적인 측면마저도 기계에 지는 순간, 영장류의 우두머리라고 자처하는 인간은 가장 먼저 기계에 지배되어, 기계로부터 지배받는 인류 역사의 새로운 서장을 쓰게 될 수도 있다.


흔히 '핵전쟁'을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만큼 살아남은 인간이 삶이 처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인류사를 적어도 내가 늙어죽을 때까지는 아직 안 겪을 것이고,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부디 미래의 인류가 판도라의 상자를 함부로 열어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수백억명의 사람이 기도를 해도 인류의 역사에서는 한번도 빠짐없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왔었지만 말이다..




# 참고 사이트 


1. 네이버 영화, 영화 "엑스 마키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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